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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정책과 횡단정책: 아프리카를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by dailypick4 2024. 10. 18.

종단정책횡단정책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각각의 세력이 추진한 식민지 정책을 말합니다. 이 두 정책은 서로 충돌하며, 열강들 간의 긴장과 대립을 불러일으켰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경제적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의 배경, 목적,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종단정책: 영국의 아프리카 제국주의 야망

종단정책의 배경

종단정책(Longitudinal Policy)은 영국이 19세기 후반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 추진한 식민지 확장 정책입니다. 영국은 북쪽의 이집트에서 남쪽의 남아프리카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제국을 건설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종단정책은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연결하여 "케이프타운에서 카이로까지"라는 영국 제국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망: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강력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더 많은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지 확장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에 이르는 종단 철도를 건설해 영국의 해상 무역과 통신망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 영국의 종단정책은 수에즈 운하(1869년 개통)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유럽과 인도를 잇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로, 영국은 이 지역에서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동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졌습니다.

 

종단정책의 전개

영국의 종단정책은 주로 세실 로즈(Cecil Rhodes)와 같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로즈는 남아프리카에서 광산업과 식민지 확장에 힘쓰며,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잇는 종단 철도 건설을 구상했습니다.

 

  • 세실 로즈와 남아프리카: 세실 로즈는 남아프리카의 로디지아(오늘날의 짐바브웨와 잠비아)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종단정책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영국은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철도와 해상 교통망을 구축해, 자원의 수탈과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다른 열강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습니다.

 

2. 횡단정책: 프랑스의 서부 아프리카 장악 시도

횡단정책의 배경

횡단정책(Latitudinal Policy)은 프랑스가 추진한 식민지 확장 정책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며 프랑스의 지배권을 확립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서쪽의 세네갈에서 동쪽의 지부티까지를 연결하는 동서 축을 중심으로 대륙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 프랑스의 아프리카 전략: 프랑스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으며, 특히 알제리를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전역에서 식민지 확보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 사하라 횡단: 프랑스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서 대서양 연안에서 홍해까지 이어지는 횡단 철도와 통신망을 구축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동서로 연결되는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횡단정책의 전개

프랑스의 횡단정책은 19세기 말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장악: 프랑스는 알제리, 세네갈, 말리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식민지 세력을 확장하고,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출해 동부 지역까지 통제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파쇼다 사건(1898년): 프랑스의 횡단정책은 영국의 종단정책과 충돌하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파쇼다 사건(Fashoda Incident)입니다.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수단의 파쇼다 지역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두 열강은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외교적 협상을 통해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철수했고, 영국이 수단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3.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의 충돌과 역사적 의미

열강들의 아프리카 분할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은 제국주의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대륙은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중심이 되었으며,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아프리카에서 자원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 베를린 회의(1884-1885년):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은 결국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열강들이 분할하는 형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열강들이 "분할 통치"하는 원칙이 세워졌으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아프리카 각지에서 자신들의 식민지를 확립했습니다.

 

파쇼다 사건의 상징성

파쇼다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아프리카에서 충돌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두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놓고 벌인 경쟁의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는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위험에 직면했으나, 외교적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했습니다.

 

  • 영국-프랑스 관계 개선: 파쇼다 사건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서로의 세력을 인정하며 협력 관계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이후 영불 협상(Entente Cordiale)으로 이어져, 두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으로 협력하게 됩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지화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를 가속화했으며, 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열강들은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수탈하고 식민지 경제를 발전시키며,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시대에 걸쳐 열강들에 의해 착취당했고, 이는 이후 아프리카 독립운동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결론: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이 남긴 유산

 

종단정책횡단정책은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둘러싸고 벌인 식민지 확장 경쟁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남북과 동서로 아프리카 대륙을 장악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충돌했습니다. 이 두 정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적, 경제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꿨으며, 아프리카의 식민지화는 이후 아프리카 독립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종단정책과 횡단정책은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과 아프리카의 고통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